임신+출산

독일에서 출산한 이야기(양수 조기파열, 유도분만, 제왕절개...)

프라우문 2020. 6. 14. 22:10

다행히 노산과 자궁근종에도 불구하고 나의 임신은 초기 화폐상 습진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이벤트 없이 잘 지나갔다. 나의 출산 예정일은 5월 15일. 예정일 6주전인 4월 3일부터 나의 법정 출산 휴가 시작이지만 그전에 올해에 쓸 수 있는 휴가를 써서 3월 19일부터 출근을 안하기로 얘기가 되어있었다. 

3월 13일 산부인과 정기 진료가 있었다. 당시 나는 버스로 출퇴근을 했고 유럽에서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나의 산부인과 의사는 지금 시기에 버스로 출퇴근은 너무 위험하다며 나의 휴가 시작전까지 병가를 써주었고 그렇게 난 예정보다 3일 일찍 더이상 출근을 하지 않게됐다.

코로나 때문에 하루 두번 제이크와 하는 산책을 제외하고는 집에만 머물렀다. 아... 나의 출산휴가가 이렇게 진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예정일이 다가와도 나의 배는 그닥 밑으로 내려오지 않았고 별다른 가진통도 없었다. 예정일을 이틀 앞둔 13일 밤 11시경 갑자기 아랫배에 압박과 통증이 있더니 양수가 터졌다. 순간 너무 놀랬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차분히 준비에 들어갔다. 오히려 옆에 편하게 누워있던 제이크가 무얼 느꼈는지 끙끙거리며 나를 졸졸 쫓아다녔다. 임신 초기 내옆에만 맴돌다 안정기에 접어들고부턴 안그러던 녀석이 임신 말기가 되니 다시 내옆에만 붙어있었다. 다행히 출산 가방의 90% 미리 싸두었다. 조금만 움직여도 콸콸 새는 양수때문에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지만 임산부용 생리대를 착용하고 빠진 나머지 10%의 출산 가방을 마무리 했다. 그때까지 진통은 없었지만 양수가 터졌으니 그날 아이를 낳을거라 생각했다. 우리가 병원에 있는동안 제이크를 돌봐줄 마누를 위해 제이크의 식사도 55g씩 봉지에 담아 준비해두는 침착함까지 발휘했다. 다행히 짝꿍은 오후 근무가 끝나고 퇴근할 시간이라 짝꿍이 오고 바로 병원으로 출발했다. 

 

태동검사와 초음파가 진행이 됐다. 다행스럽게도 모든게 정상. 하지만 진통이 오질 않았다. 양수가 조기파열 됐으니 일단 난 입원을 하였고 짝꿍은 다시 집으로 보내졌다. 날이 밝고 다시 태동검사를 진행했다. 모든게 정상. 조기 양수 파열시 18시간인가? 20시간 후부터 항생제 투여를 시작한단다. 자연진통이 오지 않으면 유도분만을 할거라는 설명. 자연진통은 오지 않았고 유도 분만에 들어갔다. 그때까지만해도 유도분만을 시작했으니 곧 아이가 나올거라 생각했다. 한국의 출산 후기를 읽으면 조기 양수 파열시에는 무조건 24시간 안에 분만을 한다니 여기도 그런 줄 알았다. 

태동검사와 유도분만 시술시에는 Kreißsaal(한국으로 치면 분만실이 되겠다.)로 가고 나머지 시간엔 입원실에서 지냈다. 

독일은 조기 양수 파열시 72시간까지 기다리다 안되면 제왕절개에 들어간다고 한다. 그게 유도분만을 3일간 진행할거란 이야기 임을 아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첫날 오전과 오후는 아주 약한 식물성 약품을 매 1시간 반마다 먹으며 자연진통이 오길 기다리기로 했다. 만약 그게 성공하지 않을 경우 저녁에 Wehencocktail(베헨칵테일)을 마시기로 했다. 자연 진통은 오질 않았고 저녁에 Wehencocktail을 마셨다. 보통 알콜을 넣는다고 하지만 내가 출산한 병원에서는 알콜을 빼고 만든단다. 맛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진통이 시작되었다. 집으로 보내진 나의 짝꿍은 자궁문이 최소 4센치는 열려야 다시 병원으로 올 수 있단다. 그런데 이 진통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진통이어서 그런지 아님 나한테만 그런건지 5분 쉬고 1분의 진통 이런게 아니라 쉬지않고 끊임없이 진통이 시작되었다. 진통을 좀 줄이기 위해 따뜻한 욕조로 들어가 끝없는 진통과 함께 3시간을 앉아 있었다. 3시간후 헤바메가 들어왔고 진행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확인하기로 했다. 나의 자궁문은 겨우 1센치가 열렸다.... 1차 유도분만 실패... 그때는 이미 자정을 훌쩍 넘긴 시간... 헤바메는 오늘은 더이상 진행하는게 무의미 하다며 나의 진통이 너무 심하므로 내가 좀 잘 수 있게 진통제는 놔주겠단다. 분만실에서 두어시간 자고 입원실로 돌아가는게 좋겠다는 헤바메의 설명.

 

그렇게 첫날은 지나가고 둘째 날은 좀 늦게 시작했다. 첫날의 후유증으로 아침도 거르다시피 하고 입원실에서 오전 내내 잠을 잤다. 오후에 다시 태동검사가 진행됐고 결과는 정상. 그때 나의 양수는 다시 한번 지대로 흘렀다. 이러다 양수가 사라져 아이가 힘들어 지는건 아닌가 걱정이 됐지만 태동검사는 다 정상이고 양수는 새는 만큼은 아니지만 다시 생성이 된단다.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는 징후는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아 안심이 되었다. 둘째날 오후... 이번엔 질안에 젤을 발랐다. 문제는 이 젤을 바르고 1시간 동안은 꼼짝말고 누워서 태동검사를 진행햐야 한다는 것... 진통이 오는데 움직일 수가 없어 이 진통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며 호흡을 하는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결과는 여전히 충분하지 않은 진통.... 1시간 후 혹시라도 진통이 심해지면 언능 분만실로 다시 돌아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다시 입원실로 돌려보내졌다. 진통은 꾸준히 있었지만 더이상 진행은 되지 않았다. 나는 점점 지쳐갔고 슬슬 제왕절개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중분만을 꿈꿨던 나의 출산 계획은 점점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예정일을 하루 넘긴 유도분만 3일차... 그날은 조금 일찍 시작했다. 오전에 태동검사를 하고 다시 젤을 바르고 1시간을 바로 누워 움직이지도 못하고 태동검사가 진행됐다. 진통은 세졌지만 여전히 출산을 위해선 충분하지 않았다. 다시 입원실로 돌아왔고 오후에 다시 태동검사, 젤, 1시간의 태동검사가 진행됐다. 헤바메는 나에게 가서 저녁을 먹고 2시간 후에 다시 오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물론 진통이 세면 그 전에 언제든지 오라는 이야기와 함께. 입원실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으려 했지만 강한 진통에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보려 했으나 그전과는 다른 진통의 세기로 바로 분만실로 향했다. 방금전까지 나를 돌봐주던 헤바메가 저녁도 못먹을 정도냐고 물어보더니 남편에게 전화를해서 오라고 하란다. 이제 진짜로 시작이 되는구나... 짝꿍에게 병원으로 오라는 연락을 하고 진통을 조금이라도 경감시키기 위해 욕조로 들어갔다.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진통의 쓰나미로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인데 이정도의 진통이라니... 나를 지켜보던 헤바메는 진통이 너무 세고 강하다며 무통주사를 권했다. 그때까지만해도 수중분만의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무통주사만은 피하고 싶어서 무통주사 대신 진통제를 원했다. 무통주사를 맞는 순간 수중분만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통은 점점 더 세져갔고 이렇다할 휴식없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욕조의 따뜻한 물도 더이상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약 1~2시간이 흐른 후 짝꿍이 도착했고 나의 자궁문은 여전히 1센치만 열려있었다. 나는 결국 무통주사를 선택했다. 시술이 시작되었고 약이 퍼지기 시작한 후 무통천국이란 말이 이래서 있구나라는 것을 제대로 실감하게 되었다. 무통주사로 인해 아기 혼자 힘든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태동검사기를 보며 진통수치가 올라갈 때 마다 열심히 호흡을 하였다. 잠시후 헤바메가 들어와 무통주사시 진행이 너무 느려질 수 있기에 촉진제도 함께 써야한다고 설명을 하였다. 촉진제가 투여되었고 여러 차례의 내진과 자궁 마사지 등을 통해 자궁문은 점점 열렸다. 헤바메는 중간 중간 들어와 아이와 나에게 이상은 없는지를 확인하곤 다시 나갔다. 분만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은 나와 짝꿍 둘이서 보냈다. 헤바메가 지난 3일간 유도분만을 통해 나의 몸이 많이 축났다는게 보인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무통주사는 너무 세지도 너무 약하지도 않은 의료진이 원하는 만큼 정확히 작용을 하였다.  

 

나의 자궁문은 다 열렸고 아이도 많이 내려왔지만 마지막 힘주기만 하면 드디어 아이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힘주기를 할 때마다 나의 왼쪽 엉덩이에 심한 통증이 왔고 힘주기가 진행이 안되었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었다. 근무 교대시간이 되고 인수인계가 이뤄진 다음 다른 헤바메가 들어왔다. 지난 3일의 유도분만동안 자주 만났던 헤바메였다. 교대하고 들어온 헤바메는 나에게 일어나서 다음 진통이 올 때 몸을 아래 위로 털기를 권했다. 다음 진통이 왔고 털기를 시작하자 그동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엉덩이 통증이 시작되었고 발끝까지 퍼져나갔다. 서있을 수도, 누울 수도 발을 디딜 수도 없는 통증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고 나의 이성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헤바메는 의사를 불러와 상황을 설명하였다. 아기 나올 공간도 충분하고 아기도 다 내려와 있었기에 의사는 촉진제의 양을 더 늘려서 다시 한번 시도해 보기를 권했다. 그동안은 왔다가 사라졌던 엉덩이 통증이 털기 시도 이후엔 사라지지 않았고 늘어난 촉진제의 영향으로 진통과 왼쪽 다리의 통증은 심해지기만 했다. 이 모든걸 지켜보던 짝꿍은 제왕절개를 원했다. 헤바메는 내가 겁이 나서 못하는 거니 나에게 계속 털기를 할 것을 권하였다. 하지만 짝꿍은 의사에게 나를 잘 아는데 겁이 나는게 아니라 정말 다리 통증때문에 저러는 거다 강하게 어필하였고 나를 지켜보던 의사도 정말로 겁이 아니라 다리 통증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제왕절개를 진행하기로 했다. 끊이없는 통증에 호흡도 불가능 하였고 아기를 생각해서 제대로 호흡하라는 의료진의 얘기에도 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난 수술실로 옮겨졌다. 지금 상황에서 부분마취를 시도했다 마취약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을 경우엔 더 카오스가 될 수 있으니 전신마취로 수술을 하게 되었다. 차가운 수술실의 분위기, 바삐 수술을 준비하는 소리들, 호흡기가 채워지고 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니 아랫배에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지만 다리 통증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없었다. 의료진들은 내가 하체에 근육이 너무 많이 있고 임신기간동안 운동(스쿼트, 걷기, 요가....)을 너무 많이 한게 원인 모를 다리 통증의 원인(?)이라고 하였다. 이게 말인지 방구인지...ㅎㅎㅎ 내가 생각하는 원인은 아이가 밑으로 내려오면서 나의 근종을 눌렀고 털기, 힘주기 등으로 인해 그게 더 심해진것으로 추측이 된다.

 

멀리서 들려오는 아이의 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지며 기분이 좋아졌다. 드디어 나왔구나...!! 5월 17일 오전 8시 47분 4020g으로 우리의 아이는 태어났다. 3,6키로 일거라는 아기는 태어나니 4키로였다. 내가 마취에 잠들어 있는 동안 짝꿍이 캥거루 캐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아가는 배가 고픈지 계속 짝꿍의 젖을 빨려고 했단다. 귀여운것...ㅎㅎㅎ 침대에 누워서 꼼짝 할 수 없었지만 아이를 이어 받아 젖을 물렸고 입원실로 이송되었다. 독일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자동적으로 모자동실이다. 아이는 울지도 않고 열심히 젖을 빨더니 이내 잠이 들어 한참을 잤다. 난 그렇게 아기를 내 가슴팍에 올려놓은 채로 한참이나 따뜻한 아이의 체온을 느꼈다. 우리의 아이, 나의 아이가 내 가슴팍에 있다. 드디어 만난 소중한 우리의, 나의 아이... 이 기분을 어찌 설명할 수 있을지... 

나의 분만은 내가 원하고 그렸던 것과는 180도 다르게 흘러갔지만 아이는 건강하게 세상에 나왔고 내품에 있다. 그거면 된다. 와줘서 고맙고 사랑한다, 아가야.